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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의 여러 조건이 바뀌어도 친숙한 대상을 항상 동일하게 지각하는 현상을 항상성(homeostasis)이라고 한다.
우리가 받는 자극이 달라져도, 익숙한 대상은 변하지 않는 상태로 인식하게 된다.
작가는 오랜 시간 백색의 종이 화면에 그레이스케일(grayscale)을 조정하면서 공간의 광량과 물질에서 반사되는 미세한 빛에 민감하게 반응해왔지만, 항상성 때문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고 말한다. 시각적으로 완전하기 어려운 인식의 한계를 늘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는 작업하면서 마주하는 항상성의 경험을 가져온다. 다양하게 변하는 환경 속에서 대상을 인식하고 형상에 적응하는 과정이 공간 곳곳에 펼쳐진다. 기존 작업의 주된 재료였던 종이와 연필, 흑연 외에도 알루미늄 포일로 이루어진 모빌은 모두 그레이스케일에 속해 있다. 이것들은 외부의 시각 환경과 조건에 반응하는 물질적 특성을 가진다. 빛이 굴곡진 형상의 표면 위로 흡수되거나 반사되면서 명도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공간의 광량에 따라 백색과 회색은 상대적으로 밝거나 어둡게 인식되기도 하고, 주변 환경의 색채를 당기기도 한다.
전시는 회화, 모빌, 책, 벽화로 구성된다. 흑연의 그레이 스케일을 조절하면서 천천히 물체의 그림자를 떠낸 <Untitled (Allure)>, <Untitled (Three)>, <Untitled (Two)〉과 잡지의 컬러 안료를 캔버스에 쓸어와 색 면을 중첩한<Untitled(color.pp)>, <Mantis>가 벽면에 걸린다. 전시장 천장에 매달린 모빌은 작가가 발견한 일상의 사물 실루엣을 알루미늄 포일로 뭉쳐 만든 결과이다. 모빌 형상은 또 다른 그림자를 형성하면서 공간 전체에 항상성의 감각을 발생시킨다. 형상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는 북웍스bookworks와 벽화로 재등장한다. 책은 실루엣과 색 면, 어느 순간의 장면들로 분리된 사물 주머니처럼 보인다.
《항상성 homeostasis》은 결국, 사물을 인식하는 우리의 감각을 공간으로, 화면으로 확장한 것이다. 벽에 그려진 형상이 모빌의 그림자에 의해 매번 다른 색과 형태를 보이지만, 그럼에도 일단 내면에 ‘상’이 맺히면, 그것이 어떻든 일정한 상태로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계속해서 상을 만들고 익숙해지도록 조율하는 과정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리고 이것은 그 자체로 미술을 지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외부 세계를 일시적으로 고정된 상태로 두는 과정을 천천히 따라가 본다. / 송하영(ONEROOM)